(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무대 위 무용수들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공간을 채우면서 동시에 비운다.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춤사위에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철학'을 채워 넣었다.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에는 서양의 무용처럼 화려하거나 역동적인 동작이 없다. 춤을 추다가도 어느 순간 동작이 사라지고, 조금 더 나아갈 것 같은 분위기에서도 무용수의 호흡이 뚝 끊긴다. 한국 전통예술의 특징인 '여백과 절제의 미'가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공연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무'를 탄생시킨 제작자들도 이 같은 세간의 평에 동의했다. '일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창작 감독)인 정구호 연출은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우리 전통예술이 가진 여백의 미를 '일무'에서 보여주기 위해 안무를 많이 연구하고, 무대에도 많은 고민을 담았다"고 밝혔다.

여백과 절제의 미를 살린 대표적인 장면은 3막과 4막의 군무에서 찾을 수 있다. 정 연출은 "우리 전통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3막과 4막은 무대 가운데를 하얗게 비운 상태에서 무용수들이 '뭉쳤다가 흩어졌다'를 반복한다"며 "이는 마치 한국의 정원이 서양이나 일본의 정원과 달리 조경을 담 쪽으로 밀어서 중경을 항상 비워놓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출 의도는 안무에도 꼼꼼하게 반영됐다. 정혜진 안무가는 "무대를 꽉 채우지 않고 빈 곳을 만들어 줌으로써 관객에게 답답함이 아닌 시원함을 선사하고 싶었다"며 "서화에서 난 한 줄로만 화선지를 채우듯이 무대 한 곳을 과감하게 비워두는 안무를 짰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무'가 단순히 전통예술의 방식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안무는 물론 무대와 의상 하나까지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거쳤다. 정 연출은 "'일무'는 전통적인 가치를 현대적인 언어로 진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그래서 기본적인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관객에게 변화를 보여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공연 장소가 마당에서 무대로 바뀐 점도 신경을 썼다. 정 연출은 "본래 전통춤은 마당처럼 관객이 가까운 곳에서 보던 공연이었지만, '일무'는 무대로 장소가 바뀌어 관객과 무용수의 거리가 멀어졌다"며 "그래서 안무와 의상 등이 조금 더 단순해지고 강조된 모습으로 보이도록 변화를 줘야 했다"고 말했다.

무용수들도 복잡한 전통 안무가 현대적인 느낌이 나도록 단순화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일무'에 출연하는 김경애 서울시무용단 단원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맞출 정도로 '일무'라는 작품은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며 "단순한 동작마저도 단순해지기까지의 과정은 굉장히 복잡했다"고 돌아봤다.

2022년 초연한 뒤 매년 무대에 오르는 '일무'는 시즌마다 안무와 의상 등에 조금씩 변화를 주며 '완성체'로 진화하고 있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변화에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정 연출은 "초연 때는 조금 더 전통에 가깝게 접근해서 작품을 제안했다"며 "2023년 뉴욕 공연을 앞두고 '작품을 업그레이드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현대적인 재해석을 집어넣어 변화를 줬다"고 했다.

정혜진 안무가도 "그동안의 공연과 달리 올해 공연에서는 이전보다 안무에 규칙을 많이 집어넣었다"며 "더 정교하게 춤 선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업그레이드 4.0 버전'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일무'의 네 번째 시즌은 오는 21∼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후 강릉아트센터(8월 29일)와 대구문화예술회관(9월 4∼5일) 공연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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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v.daum.net/v/20250821181828179